김구와 최준례여사자료
등록일 : 2026-01-25 작성자 : 김종화 조회수 : 39
첨부파일 : FB_IMG_1769291772950.jpg
김구와 최준례여사자료_2

■귀중한 자료 공유■

이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의 아내인 최준례(崔遵禮) 여사의 묘비를 촬영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1924년 중국 상하이의 공동묘지에서 촬영된 것으로, 묘비 뒤편에는 김구 선생의 가족들이 서 있습니다.

사진 속 인물과 비석에 새겨진 내용의 상세한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진 속 인물

왼쪽 뒤 (모자 쓴 남성): 남편 백범 김구(金九) 선생입니다.

가운데 뒤 (여성):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자 최준례 여사의 시어머니인 곽낙원(郭樂園) 여사입니다.

오른쪽 앞 (큰 아이): 장남 김인(金仁)입니다.

왼쪽 앞 (작은 아이): 차남 김신(金信)입니다. (훗날 제6대 공군참모총장 역임)


2. 묘비의 내용과 해석

이 묘비는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의 동지이자 한글학자였던 김두봉(金枓奉) 선생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습니다. 특이하게도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고, 한글 자음 순서를 숫자로 치환하는 암호 같은 표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중앙: 최 준 례 묻 엄

'무덤'의 당시 표기인 '묻엄'을 사용했습니다.

왼쪽: 남편 김구 세움

오른쪽 (생몰년월일 암호):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자음 순서(ㄱ=1, ㄴ=2, ㄷ=3, ㄹ=4...)를 대입하면 단기 4222년(서기 1889년) 3월 19일 태어남이 됩니다.

대한민국 ㅂ해 ㄱ달 ㄱ날 죽음

대한민국 6년(1924년) 1월 1일 죽음.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기산)


3. 역사적 배경

최준례 여사는 1920년 아들 김인을 데리고 상하이로 망명하여, 고된 피난 생활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독립운동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1924년 1월 1일, 늑막염과 폐병으로 타국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비석은 상하이의 동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워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구선생 부인 묘소의 한글 비석은 한글서예사에서도 아주 귀중한 자료이며 더구나 아라비아 숫자를 대신해서 한글 자모를 쓴 것은 강한 민족애의 발로로 보입니다.


좋은 자료를 받았기에 공유합니다.


2025 01 2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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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2026-1-2510:44:19
귀한 자료 공유 해주서서
감사드립니다
백영숙 2026-1-3108:15:36
좋은 자료 보았고 또 그 때의 암호화 한 글 내용이 남 다르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